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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그토록 성에 대해 무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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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기준점이 무엇인가? 기준점이 뭐냔 말이다. 사람들의 논쟁은 끝날 줄 모른다.

대체 비윤리적이란 말이 무엇이고, 옳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기준점이 부재할 때 사람들의 주의는 언제나 관습과 문화를 향한다. 

 

흔히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람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지를 몰랐다. 지식이 없으니 자신으로 살라는 말도 공허할 수 밖에 없었다. 기질이나 성격, 성품이나 체질만으로는 인간의 성에 관해 그 무엇도 얘기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별자리를 언급하거나 혈액형을 언급한다. 

 

별자리나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일단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잡지 칼럼란의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그런 지식에 우리 삶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별자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별자리는 휴먼 디자인의 배경지식 중 하나로서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사실상 인간이 천체를 관찰하기 시작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문해석학은 고대의 관찰과학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고도의 세밀한 지식들이 체계화되어 있다. 어떤 이론은 12가지 별자리에서 그치지 않고, 각 별자리를 주 단위로 나눠 48주간으로 나눠 더 섬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48주간 맥락에 따르면 나의 디자인은 ‘개척자pioneer’인데 실제로 나는 별자리를 알기도 전에 나의 이메일 주소를 pioneer라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 것도 맞는 것이 없는데도 그 지식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천문해석학이 정교한 설명을 제공하면서도 맞는 부분이 없었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명백을 유지해 오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1781년 인간이 7개 센터 존재에서 9개 센터 존재로 변이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7개 센터 지식인 천문해석학의 정확성에도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소 2가지 이슈가 존재한다. 하나는 별자리 해석이 미정 센터에 위치한 관문을 해석할 때는 그 신뢰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미정 센터에 들어있는 관문들은 별자리 행성들과 같은 위치를 갖지만 센터의 속성으로 인해 일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반반 확률의 요행으로 전락하고 만다. 

 

두번째 이슈는 이것이다. 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인간 메커니즘의 궁극은 바로 ‘무의식’에 있는데, 천문해석학은 이 무의식 영역을 해석할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문해석학이 그토록 정확한 해석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은 인간의 성격체(의식부분)로 국한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Who you think you are)’만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맞을 수 밖고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므로, 왜 어떤 부분은 명확한 해설이 제공되지 않는지를 말할 수 없다. 

 

휴먼 디자인은 9개 센터 지식이다. 7개 센터 인간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기존 지식으로 현재의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7개 센터 시대의 교육, 7개 센터 시대의 학문들로는 9개 센터 인간을 이해하기에 역부족이다. 때문에 리딩 고객들이 리딩 서비스를 받은 후 그토록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존재다. 이제까지 인간이 지적 탐구를 통해 알아온 모든 것들은 밝혀질 수 있는 것들이 밝혀질 수 있을 때에 밝혀진 것이다. 그 뿐이다. 알 수 있는 것외에 알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때가 허락지 않았고, 인류 문명이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타임라인에서 인간이 할 수 있었던 일이란, 결국 드러난 지식을 실험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휴먼 디자인은 논리적인 지식이면서, 동시에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경험지식이다. 바로 이 부분이 휴먼 디자인의 신뢰도를 증가시킨다. 아니 단지 신뢰도를 높인다기 보다는 이 진실에 항복하게 만든다. 자기달성 예언이란 말은 그 지식의 구체성과 복잡도가 높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거짓말 하나를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7가지의 다른 거짓말이 요구된다. 휴먼 디자인처럼 엄청난 복잡계 지식으로 거짓을 말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지력이 필요한데, 이 또한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한 얘기다. 현대사회와 같이 고연결성을 가지는 초인터넷 시대에 누군가를 속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길어야 몇 년이다. 이렇게 투명하고, 또 진정성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그 누구하나 속이는 일이 쉽지 않다. 

 

요는 이것이다. 우리는 7개 센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윤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유전적 변이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메커니즘적 수준에서 그렇게 작동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지 않다. 

 

미디어는 실태를 반영한다. 세상은 반영하는 거울이다. 드러난 것을 반영한다. 결코 새로운 현상을 창조하지는 못한다. 9개 센터 변이는 인류에게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변이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트랜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체 트랜드를 창조하는 실체적 힘은 무엇일까? 어디서 이 모든 것이 발원하는가? 해답은 우주 자체의 시작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구와 그 생명체들이 그러하고, 당신 또한 그 창조의 결과다. 당연히 유행도 드러난 현상이다. 트랜드를 만드는 실체는 프로그램이다. 언어유희적 표현을 쓴다면 트랜드는 트랜짓에 의해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트랜드를 창조하는 것은 트랜짓이다. 트랜짓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프로그램이 얼마나 정교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통제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프로그램 밖에 있지 않고 프로그램 안에 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진다 한들, 프로그램을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섹스, 다시 말해 인간의 성정체성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메커니즘적 이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통달의 4단계로 표현한다면 ‘무의식적 무능력’의 상태인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휴먼 디자인이 결정적인 솔루션이 되는 것이다. 

 

휴먼 디자인은 인간이 자신 스스로를 알 수 없는 ‘무의식적 무능력’의 영역에 대해 한 줄기 거대한 빛을 비춰준다. 모든 이들이 알고 싶어 하지만, 너무도 무능하기에 알아차릴 수 없었던 그 놀라운 지식이 휴먼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드러난 것이다. 

 

인간의 성적 메커니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람둥이니, 간통이니, 일부일처제니 하는 말은 인간 무지의 발로이다. 단지 ‘계획의 시대(1615~2026)’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일부일처제는 그렇게 필요한 도구가 아니다. 

 

물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부일처로 살아가겠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힘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인간은 흩어질 것이다. 인간은 더 큰 자유를 찾아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종교의 시대가 끝날 것이고, 사회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때문이 아니다. 프로그램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출현시킨 것이다. 

 

당신의 차트는 트랜짓의 산물이고, 지금도 매순간 그런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현재의 트랜짓은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차트다. 

 

인간 성의 신비는 몸의 메커니즘(차트의 빨간색 영역)을 볼 때에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몸이 곧 삶이고, 차트의 빨간색 무의식 영역이 바로 몸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성의 본성에 대해 아무 것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또한 동일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모두가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 의식은 이 점에서 철저히 무력하다. 그래서 성적 자유를 원하면서도 아무도 성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아는데서 시작된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무엇을 아는지를 알아야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법이다. 

 

휴먼 디자인은 당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해 줄 것이며, 그래서 당신에게 한줄기 빛을 비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대로 살 권리가 있다. 그러려면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먼저 제대로 배워야 한다. 휴먼 디자인은 다른 어떤 지식들과도 다르다. 휴먼 디자인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휴먼 디자인은 당신을 치유한다. 

 

 

 

 
휴먼 디자인 한국본사
레이브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