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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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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칼럼을 쓸 때마다 족히 2~3시간이 소요된다. 글의 완결성 자체도 그렇거니와 오탈자 교정이나 띄어쓰기를 확인하는 절차도 만만치 않다. 팟캐스트가 더 편하다. 아무래도 글은 휘발성이 없기에 독자들의 눈에 선명한 그림을 그려 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러나 글의 유익을 간과할 수 없다. 집단Collective은 ‘시각Visual’중심적인 본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휴먼 디자인을 배운 사람들은 모두 알다시피 ‘집단회로’는 시각기관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17번과 11번 관문이 생물학적 눈과 직접 관계된다.) 때문에 글로 남기는 경우 글 자체가 가지는 명징성으로 인해, 그리고 집단에게 미치는 여파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말 자체보다는 더 큰 파급력이 있다.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지만 그만큼 보상도 크다.

 

아토믹 리서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가 달에 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영국인들이 자그마치 52%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3~4년 전 내가 운영하던 ‘fly’ 카페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인 듯 하다. 당시 나는 미국의 달착륙에 관한 다양한 음모론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정된 마인드에 논리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디자인을 가진 나로서도 스스로에게 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내게는 4번 관문과 17-62채널이 있다. 매우, 매우 논리적인 디자인이다.) 그런데 유투브를 포함, 다양한 인터넷 채널에 공개되어 있는 달착륙 음모론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많은 자료들을 유심히 지켜봤고, 결과적으로 달착륙이 음모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시점 기준, 이런 생각은 다소 위험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 왠지 사이비스러운 냄새가 풍긴다고나 할까? (그러한 ‘분위기’가 바로 트랜짓이 연출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내가 이러한 생각을 공유할 당시(강의 중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몇몇 네티즌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았다. 더불어 나의 비즈니스 이미지에도 다소 부정적인 영향이 미쳤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쩌면 내가 괜한 말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그리고 며칠 전 지진이 일어났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지진이 일어난 때는 정확히 2017년 11월 15일 14시 22분 32초다.) 그리고 지진에 대한 트랜짓을 분석하던 중 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EARTHQUAKE

이미지. 2017 포항 지진 트랜짓 차트(2017.11.15.14:22)

 

토성에 있는 11.4는 교사라 불린다. 이는 물고기 자리 시대의 교사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고, 모든 지식의 전제가 되는 공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디자인을 가진 사람들은 개념을 전달하는데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11.4에는 동시에 매우 어둡고 암울한 면도 내재되어 있다. 맹목적 믿음을 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믿음을 강제하기까지 한다. 

 

모든 배움은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지식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인류가 앎을 획득하는 절차에 있어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이다. 어떠한 이의도, 어떠한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프로파일1 강의에서 인류의 지식 습득 과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어떤 지식이든 스승과 교사에 대한 전적인 믿음에서 출발해야 하며, 일정 수준의 개념들, 어휘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어떠한 세련된 지적 사고 과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 11.4는 ‘백마술white magic’의 속성을 갖는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집단에 전달하는 역량이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디자인이 부정적으로 표출될 때는 사이비 종교가 출현하기도 한다. (한편 아인슈타인과 마르크스같은 세계적인 사상가들에게도 11.4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지만 때로 매우 어두운 그늘을 드리기도 한다.

 

11.4는 종교적 믿음과 맹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11번 관문에 맞은편에 있는 56번 관문은 ‘나는 믿는다. 믿지 않는다.’의 관문이며, 그래서 이들은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 여부없이 그저 무언가를 믿거나 불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언제나 표현하게 되어 있다. 

 

자연재해는 단지 자연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류는 과학이 발견한 도구들로 지진파를 예측하거나 분석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집단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지진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신을 믿는 사람들은 지진이 신의 형벌이라 생각한다. (이는 마치 자석의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을 때 자석 앞에 절하고 제물을 바치던 고대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나도 지진파를 느꼈다. 초고층 건물의 매우 단단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에 있는 건물도 흔들렸다. 이렇게 강한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천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건물들이 무너졌다. 이제 우리나라는 마약청정국도 아니고, 테러안전국도 아니며, 심지어 지진으로부터도 안전하지 않다. (다음은 쓰나미일까?)

 

11.4가 토성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 사건이 바로 믿음체계에 대한 처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에는 인간의 맹신, 무비판적 추종, 기복적, 샤머니즘적 신앙, 잘못된 교육, ‘가만히 있으라.’에 대한 무비판적 허용에 대한 처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더욱 더 아이러니한 부분은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故 김주혁씨 사건 이후로 이번 일이 너무도 빨리 우리 곁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죽음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은 고뇌를 안겼다. 우리는 남은 자들로서 우리가 왜 살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지난 칼럼을 읽어 보라.) 그런데 우리는 다시 한 번 꽤 다루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 있다. 이 트랜짓, 다시 말해 토성에 있는 11.4는 바른 앎을 추구하지 않고 맹신하고, 맹종하며 자신의 앎을,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그런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이 한국 땅에서 일어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달착륙 음모론은 이번 지진과도 꽤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인터넷 기사들을 검색해 보니, 이제 우리 나라 국민들도 달착륙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닐 수 있다는데 에너지를 모아가는 듯 보인다. 누구든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겠는가?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달 표면의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림자는 광원의 반대 방향이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달 뒤편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평생 영광스럽게 여기고 살아 마땅한 비행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적어도 의심을 해 볼 여지 자체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전체 시스템은 지난 수십년간 무조건적인 충성과 맹종을 강요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문명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큰 음모론이기 때문에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이는 인류 역사 최대의 사기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배후에 일루미나티라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정부 기관은 사실을 밝히고자 하지 않았다. (기존 정권에서 모든 배후에 빨갱이가 있다고 주장했던, 그래서 전 국민을 잠재적 간첩으로 몰았던 상황과 비견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와 관련 선덴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영화 한편이 있었다. 바로 작년에 개봉한 <아폴로 프로젝트>다. 나는 이 영화를 조금 전 시청했다. 이미 음모론 자체를 상당 부분 인지하고 있던 상태에서 시청한 영화였음에도, 영화의 전개 방식과 연출 방식으로 인해 마치 폭로된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몇몇 장면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의 불편함을 느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제 전 세계가 공감하는 음모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한 느낌마저 든다. 영화는 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난 직관적인 느낌으로 보게 된 이 영화로부터 꽤나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추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1969년 7월 20일, 바로 아폴로호가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 표면에 착륙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한 1969년은 ‘글로벌 사이클Global Cycle(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412년 단위의 문명 전환)’ 기준 라인1에 속해 있는 기간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속한 이 라인1의 8가지 열쇠들 중 하나는 바로 16.1 ‘착각’이다.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아래 문장을 확인해 보라.

 

 

16.1 ‘착각Delusion’ – 잘못된 열정

 

▲ 몽상가. 백일몽을 통한 재능의 표현. 

▽ 불가피하게, 실현되지 않은 주장을 공개적으로 소통함. 환상을 사실처럼 표현하는 경향성. 

 

 

당신의 눈을 의심치 말라. 착각, 잘못된 열정, 환상을 사실처럼 표현하는 경향성이 바로 1번 라인, 우리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이 시대의 본질이다. 지난 60년의 역사는 속고, 속이는 역사였으며, ‘계획의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매혹적이며, 동시에 가장 기만적인 미디어가 인류를 착각에 빠뜨렸던 시대였다. 

 

미디어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들은 많은 면에서 환상을 사실처럼 여기게 만든다. 전혀 웃기지 않은 장면에 웃음효과를 삽입해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나, 유명인들과 정치인들이 당신에게 실현되지 않은 꿈을 파는 것도 바로 이 트랜짓의 일부인 것이다. 

 

더 하고 싶지만 위 맥락의 본질을 명료히 하고자 생략의 미를 발휘하고 싶다. 인류는 프로그램 속에 있다. 이제 우리는 물고기 자리 시대의 스승들(11.4 ‘교사’)로부터, 물병자리 시대의 교사들(17.4 ‘인사 관리자’)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믿음도, 착각도 통하지 않는다. 인류는 자신의 기반에 대해, 이 모든 기초들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당신도 알 것이다. 연금제도는 우리를 지탱하지 못한다. 대형 보험사들도 뭔가 속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대형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연금이 결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은행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정부정책도, 종교도 당신을 속이고 있다. 나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책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과 꽤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모든 것은 착각이다. 트랜짓이 이런 배경 주파수를 방출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럴 듯 하게 보였던 것이다. 

 

더 이상의 맹목적 믿음은 없다. 종교도, 전통도, 교육도 더 이상 기존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 종교가 없는 국민들에게 국가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정부도, 대기업도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맹신하지 말라. 맹종하지 말라. 직접 배우고, 실험하고, 이를 확증하라. 이제 더 이상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외부권위는 없다. 종교 지도자들은 도망칠 것이고, 정부 관료들은 더 이상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나라. 자신으로 깨어나라. 

 

 

 

휴먼 디자인 한국본사
레이브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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