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자격증 공부 중 너무나 큰 쓰라림을 달래기 위해 몇 번 읽은 적이 있던 ‘호오포노포노’에 관한 동영상을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폴박 대표님의 유투브 강의를 듣고 1년을 기다려 8차 LYD 강의를 즐겁게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으로 시작하였으나 이제는 어떻게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휴먼 디자인에 대한 신뢰가 커졌습니다.

2. 나의 이야기들

(1) 드디어 해결한 큰 고민 하나

좀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세상의 반쪽인 여성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남성만 득실대는 남고, 공대, 군대, 대학 고시반, 그리고 남성이 99%인 건설 관련 공무원 생활… 이런 곳을 거치다 보니 여성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센스가 없었습니다. 하여 그냥 잘 하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학 동아리 그리고 공무원 동기 등 집단에서의 여성들은 언제나 뒤에서 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왜 세상의 반들이 나에게 저럴까?’라는 고민이었지만, 제가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 여성에게서 또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분노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갔을 때에는 외국 여성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세상의 반과 담을 쌓고 지내곤 했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러한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렴풋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의 반을 향해 분노가 아닌 연민과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에너지와 나의 생활

젊은 날 해병대에 갑작스럽게 입대하였습니다. 그 결정은 감정 권위를 따른 것이 아닌 오직 오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훈련병부터 군 생활은 프로젝터로서 힘든 생활이었습니다. 프로젝터이지만 세 개의 에너지 선터가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평상시의 훈련은 감당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병 시절 후임병의 실수에 의한 단체기합을 받을 때 치욕을 경험했습니다. 전날 밤샘 상황실 근무를 서고 연병장 50바퀴(20km정도)를 무장을 메고 비 오는 날에 뛰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40바퀴나 돌았는데,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41바퀴째에 퍼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후배들의 앞에서 선배가 퍼진다는 것은 해병대에서는 치욕 중 하나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이번 강의를 통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임을 깨닫고 작은 힐링을 경험했습니다. 프로젝터로서 에너지를 항상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3) LYD를 신뢰한 순간

저는 항상 의심이 많은 타입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일단 의심하고 봅니다. 휴먼 디자인도 어느 정도의 좋은 느낌으로 왔지만 강의를 들으면서도 자주 떠오르는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분할 정의’를 설명할 때 목 센터를 경유하는 여러 관문들의 다리가 나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강렬하게 공감했습니다.

(4) 나의 감정

처음에 감정이 정의되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이건 나랑 맞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감정의 요동을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는 너무 큰 감정의 요동을 느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감정의 파동은 분명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요동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저는 이제 이러한 파동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중1때 감정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친형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아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고, 이뻐하던 고양이가 죽어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저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ㅎㅎㅎ 이제 보다 풍부한 삶의 경험들이 기대됩니다.

(5) 나의 쓰라림들

저는 프로젝터로서 언제나 남의 제대로 된 인정을 기다렸습니다. 공부도 즐거워서 한 것이 아닌 선생님의 인정이 그리웠기 때문에 하였고, 일도 상사에게서 인정받기 위해서 하곤 했습니다. 정말 유치하지요 ㅎㅎ 최근 국가 전문자격증을 준비하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험이었기 때문에 3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그 시험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공부 기간이 말해주듯 여러 번의 낙방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그 쓰라림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쓰라림이 너무 커 자살까지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시험을 통과했지만 이제 또 다른 ‘Incarnation Cross od Eden이라는 삶의 물결을 경험해야 합니다.

(6) 나의 야망

어찌 보면 깡촌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저를 서울로 그리고 더 나은 것으로 이끄는 것은 야망 채널이 항상 작동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참석자분께서 저를 보고 언급한 “매력적인 미소 뒤에 숨은 야망”이 저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3. 나가며

(1) 프로젝터는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8차 LYD는 정말 좋은 사람 그리고 나에게 잘 맞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세션이었습니다.

(2) 언제나 그랬듯, 저는 휴먼 디자인 복습을 아직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습관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분야이고 제대로 다시 알고 싶어 재수강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아직 나의 디자인도 제대로 모르는데, 나에 대한 디자인을 설명해 주는 재수강하시던 분들을 놀라움으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아마 다음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디자인도 제대로 이해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삶의 뚜렷한 방향이 없는 타입이라 지금 펼쳐지고 있는 저의 인생이 많이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휴먼 디자인을 플랫폼으로 삼아 정화와 진정한 깨어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 길에 여러분과 휴먼 디자인이 나침반이 되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