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리딩을 해 나가던 중, 채널 하나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26-44 ‘항복surrender‘의 채널. ‘돈줄money line‘이라 불리는 45-21이나, 큰 부를 성취할 잠재력이 있는 2-14 ‘박동the Beat‘ 채널도 있었지만, 이 채널은 유달리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6-44 채널이 정의된 사람들 중에는 경제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띠었는데, 이런 현상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성이 발현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을 터, 1/3인 필자가 느끼기에 뭔가 깊이 연구할 만한 대상이 발견된 듯 보였다. 

비장과 에고의 조합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비장 센터에 존재하는 44번, 그리고 에고(심장) 센터에 존재하는 26번, 이 둘의 조합은 한 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26번의 에고 파워(small ego)는 21번(big ego)의 그것만큼 강하진 않지만, 놀라운 언변으로 자신이 포착한(44번) 대상을 구워 삶을(?)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 채널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중소기업을 먹여 살릴 만큼 막강한 성취를 이룰 수 있기에 응당 관심이 쏠렸으리라 짐작한다.

 

26-44
이미지. 26-44 항복채널(‘송신기transmitter’의 디자인)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채널이 정의된 많은 사람들이 부와 비즈니스를 다룸에 있어, 채널의 ‘채’자도 모르는 것 마냥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에 처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다. 26번이 정의된 필자에게 이 채널은 (적어도 휴먼 디자인을 알게 된 초창기엔) 부러움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이들의 힘을 잘 활용해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변의 적어도 4~5명의 사람들로부터 같은 패턴, 같은 광경을 자주 목격했기에,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경제적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들의 차트로부터 어떤 신뢰할 만한 패턴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에게 정의된 4번 관문으로도 가설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떤 사람에겐 프로파일 5가 있었고, 어떤 사람은 G센터가 미정이었다. 그러므로 각자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어릴 때 겪은 정신적 외상이나, 미정센터 또는 특정 채널과의 동일시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천적 요인은 너무도 다양하기에 원인을 찾아보려 지나치게 애쓰다 보면 오히려 길을 잃고 작위적 판단을 내리기 쉽다. (최근 진행된 ‘차트해석원리’ 강좌에서 ‘순방향’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역방향’ 해석은 ‘하얀 가운 효과’, 다시 말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맞는 말을 하고 있다는 맹신의 가능성을 배제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사례를 발견할 때마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디자인을 음미했으며, 이 과정을 반복했다. 수 개월에 걸친 탐구 끝에 다음과 같은 사실 하나를 재인식할 수 있게 되었는데, 결론은 이렇다.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가 문제라는 것’ 

달리 말해, 이 채널이 부적절하게 사용되어 균형력을 발생시켰다는 의미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작용력이 있으면 반작용력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주는 결코 잉여된 에너지를 가만히 놔 두지 않는다. 채널의 본성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이 가진 에고의 의지력은 종종 역풍을 만났을 것이며, 이 때문에 자신 안의 힘이 소멸한 듯한 두려움마저 느꼈을 것이다. 

휴먼 디자인이 (자신에게 올바른) 삶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자아not-self‘로 살면 단지 행복한 느낌이 없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온갖 종류의 만성적 고통을 유발한다. 그래서 자신의 본성이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일이 생긴다. 알다시피, 정의 영역들은 만성적 비자아로 살 때, 미정 영역보다 더 큰 고통을 일으킨다. 언제나 그렇듯, 진짜 문제는 밖이 아닌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자신됨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비자아 전략에 기초해 사람을 선택하고, 자신의 기준에 다른 사람을 끼워 맞추려고 사람들을 조종한다.  옛부터 현인들이 에고를 유의하라고 말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에고는 물질계를 다룰 뿐 아니라, 많은 성취를 이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매우 취약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에고 자체가 강한 힘을 지니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건강치 못한 에고와 이를 증폭시키는 삶의 현실 속에서 돈과 성취의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분별력과 태도를 갖추기 전까지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본디 고통이란 것은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붓다가 설파한 ‘고‘, ‘집‘, ‘멸‘, ‘도‘란 결국 ‘마야maya‘의 이치를 알게 하여, ‘마야’에 깨어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기본 과정을 충실히 공부한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이제는 휴먼 디자인이 현대적 의미의 고집멸도를 말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균질화된 세상의 본성에 휩쓸려, 자신 아닌 다른 존재로 살려 하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더 비자아 고통에 물든다. 또한 원리와 이치를 모르므로, 벗어날 길을 찾지도 못한다. 더욱 더 안 좋은 점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고 나면, 진정한 앎의 가능성과 변화의 기회조차 부정하려 들게 된다는데 있다. 삶의 빛깔이 너무 어둡고, 스산해서 총천연색의 삶을 더 이상 예전처럼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인셉션inception>은 이를 ‘림보limbo(영원히 구제받을 수 없는 지옥의 변방)‘로 묘사했다.

 

 

이 세미나는 당신에게 두 가지 풍요를 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문명세계에서 돈이 창조되는 원리와 돈이 흐르는 원리에 대해 눈을 뜰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내재된 고유한 잠재력을 인식하게 되어, 자신답게 사는 삶의 가치를 물질적인 차원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를 테면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황혼이혼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60~70까지만 살고 죽는다면, 굳이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남은 30년까지 이렇게 살고 싶진 않거든요.” 많은 고통과 자기연민이 묻어나는 고백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이에 대해서도 별도로 언급을 하겠지만, 애초부터 자신의 본성에 맞는 파트너와 결혼을 하고, 또 전략과 권위를 따라 바르게 헤어진다면 심각한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전략과 권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면, 헤어질 때만이라도 이에 대한 오해를 풀 수는 있지 않겠는가. (‘파트너십 리딩partnership reading’을 의미함)

그렇다. 삶이 너무도 길기에, 언젠가는 자신만의 힘으로 삶을 일구어야 한다. 어딘가 모르게 표현이 비슷하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 것이며..’ 인생을 살다 보면 결국 자신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하는 때가 온다. 지금과 같이 기대수명이 많이 늘어난 시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비자아 전략에 기초한 비자아적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낄 것이고, 남은 삶만이라도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고자 할 것이다.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대의 비즈니스 문화는 오랫동안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본디 일주일 내내 직장 생활을 하는 방식 자체가 인간의 본성에 잘 맞지 않는다. 주 단위 개념도 이런 고통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2월에 열릴 Transit 강좌에서 별도로 소개할 것이다. 7일을 한 주로 여기는 현대의 문화는 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한 주, 즉 ‘Rave Week’와는 정확히 맞지 않는다. 휴먼 디자인 지식에 따르면,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는 날,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날은 따로 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지식의 부족, 또는 삶에 대한 오해로 평생 필요치 않은 고통을 겪는다. 결혼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나, 돈을 마음처럼 잘 벌지 못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같다. 세상 모든 것은 각자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는 법이지 않던가. 삶의 원형을 부정하면, 결국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는게 인간의 한계고, 본성이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디자인 조합으로 한 생애를 살도록 의도되었기에, 자신의 본성을 무시하면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맘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설령, 당신이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해도 결코 당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지의 부족은 본질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애초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필요한 건 정확한 지식이지, 더 큰 열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은 우주의 본성과 나의 본성을 수용하고,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데 있지, 자기 ‘마음대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지 않다. 이같은 사실을 무시하면 그 누구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독자들 중 누군가는 평생 모은 돈을 단 2~3년 만에 모두 잃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잘해야 고작,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수준만 유지하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머니 세미나’란 특별한 주제를 정한데는 이런 배경이 존재한다. 경제적 자유를 원한다면, 사물의 이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휴먼 디자인은 ‘마야’의 모든 법칙을 관통하므로, 64개 관문의 순환원리와 그 기본 개념들을 알면, 돈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흐르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하루 아침에는 아니어도, 이틀 간의 세미나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인식의 틀을 갖출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앎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기회들을 자주 놓치고, 그래서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 삶이란 본디 올바른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갈 때, 그에 상응하는 열매로 보답하는 법이다. 거듭 말하지만,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란 차별의 언어가 아니다. 우주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 삶의 순환궤도가 이 두 가지 뿐이어서,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좋아지거나, 점점 더 나빠질 뿐인 것이다. 

 

Man-in-Field

 

이 세미나는 당신에게 두 가지 풍요를 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문명세계에서 돈이 창조되는 원리와 돈이 흐르는 원리에 대해 눈을 뜰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내재된 고유한 잠재력을 인식하게 되어, 자신답게 사는 삶의 가치를 물질적인 차원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날 때부터 고유한 물질 잠재성을 갖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사람들이 독특한 디자인을 타고 나며, 그 독특함이 바로 부의 원천이 된다.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 시리즈의 저자, 휴렌 박사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로가 되면 10~20억 정도의 돈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제로 라이프란, 결국 비자아 스토리가 제거된 상태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기억이 제거된 삶은, 비자아 스토리로부터 자유로운 인생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애초부터 풍요란, 우리를 거쳐 가는 것이지 우리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다. 누구도 소유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며,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정 경제적 자유와 진정한 성취를 원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배우고, 통찰하고, 지식을 연마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진정한 변화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자신의 독특함을 이해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 이는 단지 물질적 차원뿐 아니라, 삶의 6가지 차원(경제적/영적/관계적/지적/신체적/감성적 차원) 모두에서 진정한 풍요를 성취하는 기반이 된다. 그리고 이는 배움을 통해 완성된다. 처음부터 잘되지 않아도 괜찮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니다. 누구든 충분한 시간과 인내, 그리고 적절한 배움만 있으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광경을 직접 목격했을 뿐 아니라, 5년, 10년된 서당개가 이보다 더한 변화를 이루는 광경도 지켜봤다. 당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따르면, 그리고 충분히 인내한다면 우주는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풍요로울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해 주라고. 더 많이, 더 건강하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허용하라고.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가치있고, 존엄한 존재므로, 당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다면, 휴먼 디자인은 당신을 물질의 고통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돈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지만, 돈이 우리를 통해 흐르게 만드는 방법은 꼭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으로 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자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참된 본성의 발현을 지켜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삶을 지속함으로서 눈 앞에서 돌멩이가 금덩어리가 되는 일을 경험케 될 것이다. 

 

 

레이브 코리아
PAUL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