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균질화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by Paul Park | Rave Korea 대표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란 노래가 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노래 중 하나다. 내게도 그랬다. 그냥 아는 노래 중 하나에 불과했다. 최근 2년간의 시련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이 적은 평일, 청평호를 달리며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고, 나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으로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 남았으니까. (나는 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와 준 나에게 감사한다.)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겐 처절한 시간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삶의 가치를 모르므로, 삶이 이를 깨닫게 해 준다는 뜻이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방치한 사람의 말로가 그러하듯, 내면의 느낌을 오랫동안 방치해 온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 처절함을 더 크게 느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처절함은 한편 고마운 선물이다. 고통이 자각되므로, 고통을 끝낼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처절함엔 두 가지 양상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처절함의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의 극심한 고통이다. 죽고 싶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뼈에 사무친다. ‘삶이 왜 이렇게 고통으로 얼룩져야 하는가?’ 이 시기엔 물어도 답할 이 하나없는 어둠만이 지속된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은 내가 이렇게 살 수 없겠구나.’를 깨닫고, 삶이 주는 교훈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흐름이다. 사람은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나면’ 삶을 더 이상 예전처럼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눈을 가렸던 어두운 점막같은 것이 벗겨나가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외엔 어떠한 대안도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훈련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이를 통해 내가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사람의 변화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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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화로운 전사peaceful warrior’ 중에서
 
 
 
 
우리는 변화를 마치 전자렌지에서 냉동식품을 데워 먹듯, 간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변화를 대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에는 언제나 시간이 걸린다. 이 변화는 언제나 ‘당신의 생각보다는’ 길다. 
 
우리 나라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 켄 윌버Ken Wilber 4분면(I/It/We/Its)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다름 아닌 ‘시스템Its‘ 그 자체이기 때문에 법과 정치, 전체 시스템이 정화되지 않는 한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시스템의 노예는 본디 자각능력이 없다. 하라면 하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취약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체계는 백지에 낙서를 하는 것처럼 기존 정보를 있는 그대로 흡수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 개인의 의지와 노력은 사실, 시스템을 이기기 어렵다. 아니, 맞선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누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되찾으려고 하겠는가. 
 
그래서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알게 된다. 훈련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세상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하는데, 이건 왠만한 용기없이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같이 극도로 패쇄적이고, 자존심 강한 시스템 속에선 그래서 한 사람이 자신으로 사는 것이 때로 죽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훈련을 찾아온다. 자신 안에 심겨진 법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하나 예외할 것 없이, 자신됨의 독특한 코드가 심겨져 있다. 이를 개성이나 매력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본성이나 특질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던 관계없이, 우리 각자는 독특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하고 가치있다. 이같은 사실은 인류사에서 오랫동안 관찰되고 파악되어 온 진실이며, 수 많은 역경 속에서도 인류가 오늘같은 삶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준 진정한 기반이 되어 왔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바로 이러한 의식의 결과물이다. 그 누구도 다른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 부모나 학교, 거룩한 종교의 권위라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날 때부터 자신으로 살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이 권리를 포기한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자신됨이 본성이고, 자연의 흐름이고, 목적이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기하느냔 말이다. 
 
답은 ‘균질화homogenization‘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아마도 인류의 진화 흐름을 생각해 봐야 할 듯 한데, 본디 인간의 진화 프로그램 자체가 에고로부터의 벗어남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다, 인류 전체의 의식 수준이 이제 겨우 자존심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서로를 자신의 입맛에 맞추고, 강제하고, 협박하는 흐름이 진정되기가 어려운 것이리라. 
 
실로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2020년부터 정부, 기업, 대학의 해체가 시작된다.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책임져줄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 자신으로 사는 삶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평생 이 ‘균질화’라는 감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매년 새해가 와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쇄신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며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허비하고, 삶을 허비해 버린다. 누군가는 이 삶이 다시 주어져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한다.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본성과 다름이 존재한다면, 이를 살아내지 못할 때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니 순리를 따르자면 이 고통이 훨씬 더 크다. 불변하는 독특성을 가진 개개인이, 자신의 독특성을 존중받지 못할 때의 고통은 자신으로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보다 언제나 더 크다. 외면의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지만, 내면의 고통은 그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 하나를 깨닫기 위해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한걸까?)
 
고통에 못이겨 훈련을 택한다는 건, 상처난 부위가 아파 병원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들은 그토록 그 사람을 가만히 놔 두지 않는걸까. 왜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데 험담을 하고, 비난을 하고, 협박을 하느냔 말이다. 조금 늦었다 생각되더라도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느냔 말이다. 훈련을 시간낭비, 돈낭비라 부르는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으로 살지 못해 지불하고 있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헤아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들에겐 이 자각이 버겁다. 
 
삶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늘 불평과 불만을 달고 산다. 온통 남탓, 세상탓뿐이다. 그 속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전쟁터가 된다. 같은 세상, 다른 삶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되찾기로 결단한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렇게 살려 헌신하는 사람들을 훼방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대로 살 권리가 있고,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미래를 대비한다는 미명 하에 자녀들의 영혼을 갈취하며, 탄압해 버린다. 정부가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잊지 말기 바란다. 당신은 고유하고 존엄한 존재다. 그리고 너무나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당신이 자신으로 살기를 허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기로 결단할 수만 있다면 세상도 더 이상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공명의 법칙을 따른다. 당신이 쥐고 있던 과거의 습관들, 에너지들, 고통들을 놓아 버리면, 세상도 더 이상 당신을 붙잡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은 그 어떤 누구에 의해서도 간섭받거나,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후회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 더 이상 돈 문제로 고통받지 않기를 원하는가? 하루하루 삶에 감사하며 풍요를 느끼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됨의 여정을 시작하라.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존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라. 당신이 자신의 길을 가면, 세상은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