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아 고통
‘가짜 나 Not-Self’와 ‘진짜 나 True-Self’
우리는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매사가 귀찮고, 늘 지치고 힘들며, 무엇을 해도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죠.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삶을 살도록 디자인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지금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우려 애쓰고, 방황하며, 자신과 남을 탓하는 삶 말이죠.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진정한 삶은 자신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을 때 시작됩니다. 바로 여기서 ‘자기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은 다릅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유지할 때 즐거움과 사랑이 싹틀 수 있죠. 만약 남성이 여성에게 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이 되고자 애쓴다면 즐거움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이 남성답고, 여성이 여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삶이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다름을 펼쳐내며 살아가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문제와 고통은 자신의 독특함을 부정하고, 자신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 할 때 생겨나는 것이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끌림’과 ‘결핍’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차트에서 색칠되지 않은 부분들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끌리는 영역이지만, 종종 남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건, ‘다름’과 ‘끌림’을 인정하되,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 애쓰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자기계발 이론들은 ‘자신 아닌’ 것들을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으로 여겨 다듬고, 계발하고, 뛰어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또 다른 고통을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방향•사랑•정체성
인간에 관한 오래된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죠.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인류의 절반(약 50%)이나 되는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몰게 됩니다.
‘G 센터 정의’인 사람들은 평소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전적 메커니즘에 ‘정체성’과 ‘방향성’, 다시 말해 인생 항로가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자신과 맞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G 센터는 ‘방향성’과 ‘사랑’과 ‘정체성’을 알려 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G 센터 미정’인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은 누가 자신의 짝인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인생 목적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는 사람을 따라 맞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항로를 스스로 결정하려 할 때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당신이 설령 믿음이 강한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G 센터 미정’인 사람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 헌신의 정도와 관계없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 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휴먼 디자인은 인간 유전체에 관한 과학적 지식으로써 당신을 무지와 혼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만약 당신이 ‘G 센터 미정’의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인가?”와같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종류의 책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G 센터’ 미정은 시공time-space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센터로서 3차원 시공간 내에서 인생의 신비를 드러내 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우리 삶의 ‘사랑love’과 ‘방향direction’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혼란’을 제거하고, ‘명료함’과 ‘기쁨’을 주는 것. 이것이 휴먼 디자인이 세상에 나타난 이유입니다.
‘분할’과 ‘비자아’
사례를 하나 들어 보죠. 차트 정보 중에는 ‘분할spli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종 ‘정의definition’라는 표현과 혼용됩니다.) 만약 당신이 ‘이중 분할split’이라면 자신만의 단짝을 찾으려 애쓰게 될 것입니다. 하나뿐인 짝을 찾으려 하는 경향과 더불어, ‘분할’을 메우려는 압박과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가장 크게 나타납니다.
만약 당신의 ‘분할’이 20번 ‘현재The Now’ 관문을 통해 채워진다면, 당신은 누구보다 ‘현존’에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존’을 목표 삼아 살게 되겠죠. 만약 48번 ‘깊이depth’의 관문이 당신의 ‘분할’을 채워준다면, 당신은 누구보다 논리적 ‘깊이depth’, 깊이있는 전문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16번 ‘스킬skills’ 관문이 ‘분할’을 채워준다면, 당신에게 필요치 않은 온갖 기술을 배우며 젊은 시기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52번 ‘멈춤stillness’의 관문이 당신의 분할을 채워준다면, 삶의 대부분을 명상을 하거나, 가만히 머무는 법을 익히는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당신의 인생 목적과 상반됩니다. 당신의 역할은 색칠되지 않은 부분들을 채우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당신의 역할은 ‘없는(정의되지 않은)’ 부분을 채우려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삶을 수용하며 자신만의 고유함을 즐기는데 있습니다. 분할을 ‘채우는’ 관문들은 당신 자신으로 살 때,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중 분할’인 사람들은 종종 분할을 연결해 주는 사람과 결혼합니다. 이들은 ‘단짝’, 그리고 ‘운명의 사랑’을 찾는 사람들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깊은 결속감을 느끼며, 큰 만족을 얻게 됩니다.
한편, ‘삼중 분할’이나 ‘사중 분할’인 사람들은 ‘이중 분할’인 사람들처럼 ‘단짝’을 찾거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삼중 분할’은 더 폭넓은 관계를 원하며, 한 사람에게 깊이 연결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디자인은 모든 차원에서 너무도 다르고, 독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