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디자인 message /

43-23 채널이 ‘앎knwing’

 

 

1.

(이 메세지는 43-23의 디자인에 보다 적합한 방식으로 씌여졌습니다.)

43-23 채널은 아는 자knower의 채널(정식 명칭은 ‘구조화structuring‘)입니다. 이 채널에는 매우 독특한 앎이 있고, 논리적이거나 경험적 수준의 앎이 아닌 그저 ‘알게 되어 아는‘ 그런 앎이 있습니다.

이 채널을 통해 오는 앎은 마치 ‘유레카εύρηκα’와 같이 그저 주어지는 앎입니다. 생각한다고 앎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중에 그저 앎이 찾아오는 것이죠. 앎은 현시manifestation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런 앎의 과정은 인류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모든 과학과 철학의 위대한 발견들이 불현듯 찾아오는 이런 방식의 ‘앎’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2.

 

이 앎은, 그러나 초대없이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채널은 그리 많은 초대를 받지 못합니다. 앎이 매우 독특하고, 때로 기이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훈련과 분별이 요구됩니다.

 

물론 앎을 전달하는 스킬도 중요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앎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대부분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언어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고립되 쉽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떤 영역도 올바름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인간 삶은 현시가 아니라 대부분 초대를 통해 작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43-23의 앎은 독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가치있는 앎이어야 합니다.

 

43-23은 ‘알지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재 소리를 듣기 보다는 바보, 괴짜라는 말을 더 많이 듣습니다. 인정받지 못합니다.

 

4.

 

이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나는 그래도 알고 있다.”, “나는 알고 너희들은 모른다.” (그래서 더 고립됩니다.)

 

실상은 반대입니다. 43-23의 앎은 1/1,080의 앎이고, 1/1,166,400의 앎입니다. 43-23의 앎은 그 독특함의 수준에 있어 극도로 차별화된 앎입니다.

 

5.

 

43-23 채널 하나만으로도 올바른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항상 소외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도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을 평생 느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보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43-23은 평생 어눌한 바보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모르는 데도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43-23이 알고 있는 앎의 대부분은 올바른 앎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정이 뒤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립됩니다.

 

6.

 

43-23은 아주 특별한, 자신에게 올바른 앎만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는 “I know”, “but i don’t know.”의 앎이 아닌 자신에게 올바른 매우 특별한 앎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앎을 얻기 위해, 사람들로 부터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 당신은 차별화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튀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전 존재적으로 차별화되어야만 당신의 앎이 가치있게 됩니다. 당신이 지금 알고 있는 앎은 가치 있는 앎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모두가 자신만의 앎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풍토 속에서 무지의 지를 설파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무지를 알 때만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당신은 독특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독특한 앎을 세상에 퍼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인이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앎은 당신 고유의 앎, 당신에게 올바른 앎이 아닙니다.

 

Ra Uru Hu가 말했던 바와 같이 43-23은 대부분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43-23은 자신의 삶을 가이드하지 못합니다. 43-23이 아는 대부분의 앎은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8.

 

43-23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에게 올바른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때, 그래서 당신이 진정으로 아는 것은 없다는 ‘무지無知의 지‘를 획득할 때 자신에게 진정으로 올바른 앎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정신적 고립감, 외로움,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앎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올바르게 되어야 당신에게 올바른 앎이 찾아옵니다.

 

당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당신의 앎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가장 큰 교훈.

 

앎은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뉘앙스를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조사 표현, 어감, 문장, 표현법에 많은 정성을 쏟았습니다.

 

*휴먼 디자인message를 통해 전달된 채널 지식은 전체의 1/10 또는 그 이하의 수준입니다. 본성대로 살고자 한다면 시간을 들여 충분히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잘못된 이해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