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칼럼 / 

자유로운 섹스를 허하라. 

SEX

모두들 그럴 것이다. 속으로는 원하고 있지만, 마음껏 표현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뒷골목 술집의 음담패설이나, 결혼한 아낙네들의 뒷담화 소재가 될 뿐, 자유롭게 성적 욕구를 표현해 본 적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우리가 남들 몰래 포르노 잡지를 들춰 볼 때, 유럽의 한 기숙사 친구들은 15~16세 때부터 학교장의 허가 속에 점심 식사 중에도 “나랑 할래?”라 말한다. 천국과 지옥은 저 세상이 아닌 우리의 매 순간 호흡에 이미 가득하다. 

 

언제부터일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자는 고구려 시대의 성생활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논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는 어땠나? 기방은 법적으로는 출입금지의 구역이었지만 당시 상당수의 양반들은 공공연히 기방을 들락거렸다. 열녀문을 세우는 여성들도 있긴 했지만, 한편으론 당대 여성들도 지금보단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볼 수 있다.

 

성적 권리 침해는 너무도 심각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의 펜듈럼을 벗어나 외국에서 첫경험을 하고, 외국에서 자유롭게 즐기다 오기도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설에 의하면, “00에서 유학하고 온 여성과는 만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 지극히 남성 편의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얘기다. 아직도 남성들은 자기는 되고, 여성들은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고 있다. 

 

몇 년 전 들은 얘기에 따르면, 자기 친구가 1년간 동남아쪽으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친구는 외국에서 첫경험을 했고, 그 첫경험의 상대는 50대 남성이었다고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은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의 분위기는 불륜의 스멜이 넘쳐 나는 반면, 이 여성의 그것은 자유로운 성생활 그 자체였다. 그 후로도 몇몇 남성들과 섹스를 했고, 그 중에는 아마 쓰리섬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참가자 분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중학생(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3~4명이 집단섹스를 했다가 큰 문제가 되어 재판이 코 앞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디자인이 정말 자연스럽다. 이들 중 대부분이 35-36 ‘덧없음의 채널’, (팔방미인의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성적 측면에서 이 채널은 성적 재능(Sexual Talent)을 의미하며 이 채널은 회로의 속성 그대로 집단 회로의 섹스다. 대체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무지한 성인들은 윤리와 도덕을 문제삼았다. 모르니 그럴 만하다. 부모도, 검사도, 교사들 그 누구도 인간 본성과 메커니즘을 알 턱이 없으니 이 상황이 문제로 보였을 것이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죄를 지은 것이기도 하다. 이유를 알 턱이 없으니, 제대로 된 교육은 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처벌할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7개 센터 시대의 마인드로 살고 있는 인간 군상은 언제나 이렇다. 이들은 진짜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전략과 권위이지, 젊은 나이의 집단 섹스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주홍글씨에 대한 두려움이 감춰져 있어서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본성을 모두 재단하려 한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와 관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로파일 4는 메커니즘 자체가 간통의 메커니즘이다. 지금은 간통법이 사라졌지만, 프로파일 4는 본래 이혼하기 전에, 연인과 헤어지기 전에 먼저 다른 애인을 만들어야 한다. (동성인지 이성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리스 시대의 그 찬란한 문명을 노래하면서도, 그리스나 이집트의 성문화는 미개한 것으로 보고 싶어한다. 과연 누가 미개한 것일까?) 물론 전략과 권위를 따르지 않는다면, 비자아 합리화의 이슈가 생길 것이고, 궁극에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디자인이 그렇다는 것과 실제로 자신으로 사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2030년이 되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 (종교인들은 이를 종말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한 사람이 섹스 파트너, 비즈니스 파트너, 동거인을 각각 1명 이상 갖게 되는 시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한 미래학 연구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섹스 로봇과 섹스를 즐기게 될 것이라 보고했다. (남성들은 이미 이 자유를 즐기고 있다. 400만원 안밖이면 꽤 좋은 피부와 탄력을 가진 섹스 인형을 구입할 수 있다.) 불과 8년 남짓 되는 시간이다. 

 

휴먼 디자인의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7개 센터 시대의 윤리와 도덕, 종교적 도그마들이 해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 영역에서는 어떤 전문가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야 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휴먼 디자인의 ‘글로벌 사이클Global Cycle’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412년 단위의 문명 전환이 왜 이런 식으로 일어나야 하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든 미래학자는 단지 드러나는 현상들을 수렴해 미래를 예측할 뿐, 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한 적은 없다. 좌절스럽게도 역사학자들은 한 문명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제대로 된 설명은 내놓은 적이 없다. 

 

비자아는 비자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자아는 욕이 아니다.) 비자아는 단지 답을 모를 뿐이다. 마인드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기존 지식과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가 당신 자신에게는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괴롭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무지한 말인지 당신은 아는가? 애초부터 사랑은 밖에 존재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그 애절한 사랑의 느낌은 정확히 ‘전자기적 끌림(electro-magnetic attraction)’이다. 모든 관문, 모든 채널, 모든 센터는 정의와 미정 영역이 음양 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정의된 맞은편 관문들 간에는 엄청난 전자기력이 작용한다.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이 끌림을 사랑이라 여겨왔던 것이다. 그러니 답이 있을리 있겠는가? 

 

답은 언제나 공인 교육 그 자체, 다시 말해 모든 맥락과 뉘앙스들이 공유되는 제대로 된 교육 자체에 있다. 그리고 그 시점 이후부터는 전략과 권위가 전부다. (물론 태도가 좋아야 이 실험이 제대로 작동한다.) 겉보기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맥락 오류에 빠지는 것을 방지코자 의도적으로 해설적 성격의 책을 썼고, 표면만 다뤘다. 모든 진정한 전문성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디테일없이 논리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아니, 이 말이 먹혀 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로의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사랑과 섹스에 대해 논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당신은 서로가 모두 진정으로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본성상 사랑과 섹스는 동격이 아니다. 그런 메커니즘을 가진 디자인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과 섹스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오직 섹스만을 추구하는 디자인이 있다. 섹스 자체가 목적이 되고, 섹스가 끝나도 별다른 유대를 갖지 않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공부하는 법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은 이 말을 이해하는 데만 1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소위 명문대를 다니는 학생들과 교수들도 행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메커니즘’이란 단어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메커니즘’은 기질이 아니다. ‘메커니즘’은 성격이 아니다. ‘메커니즘’은 윤리가 아니다. ‘메커니즘’은 성품이 아니다. ‘메커니즘’은 천성이다. ‘메커니즘’은 유전체 원리다. ‘메커니즘’은 바뀌지 않는다. ‘메커니즘’은 기계적이다. ‘메커니즘’은 오직 수용의 대상일 뿐이다. 

 

인간이 디자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전학에서 밝혀진 바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는다. (이제 자유의지 논쟁은 지긋지긋하다. 이 충돌은 성격체와 디자인체간의 충돌일 뿐, 생물학적 / 물리학적 수준에서 자유의지는 0.1%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이 나오면, 사람들은 이제 후천적 조건화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대로 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원리, 기반, 권위자’ 강연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교육을 잘못 받아 분별력이 없다. 학문하는 법도 모르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 또는 다른 이의 논지를 평가하는 방법을 아예 모른다. 

 

휴먼 디자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이며, 고맥락 / 초복잡성의 학문이다. 휴먼 디자인을 독학한다는 말은 있을 수도 없거니와, 제대로 된 태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남은 삶을 잘 살고 싶은가? 풍요로운 성생활을 원하는가? 죽는 날까지 자유롭게 섹스하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공부부터 하라. 무식함엔 면죄부가 없다. 

 

 

 
휴먼 디자인 한국본사
레이브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