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디자인 텍스트에 대한 오해는 태도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휴먼디자인을 공부하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이 어떠한 태도로 그것을 대하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오히려 자신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도 있다. 

 

휴먼디자인 텍스트를 자신의 합리화의 도구(핑계)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으로 살기 위한 지침으로 삼고 있는가?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감정 정의여서 불같이 싸워. (그건 디자인이니까 당연한 거야…)” 정말 모든 감정 정의들이 불같이 싸우는가? 합리화(핑계)는 없는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자신의 이기심 때문인가, 서로 깨어나기 위해서인가?

“난 에고와 감정이 미정이라서 그런 말(정당한 요구, 화남 등) 못해. (그건 디자인이니까 당연한 거야…)” 정말 모든 에고, 감정 미정들이 말하지 못하는가? 합리화(핑계)는 아닌가? 왜 말하지 못하는가, 자신의 가치가 추락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직면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쁜 일이 생길까 두렵기 때문에 직면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인가? 

 

  휴먼디자인 센터, 채널, 관문, 타입, 전략과 권위, 프로파일, 인생목적 등을 설명하는 텍스트들을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그 미묘한 뉘앙스들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휴먼디자인을 올바른 태도로 대할 때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스스로 자유할 수 있으며, 자신대로 사는 올바른 실험을 해 나갈 수 있다.

 

  사실 꼭 휴먼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삶의 모든 면에서 볼 수 있다. 그만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감정이나 기분은 태도의 결과물일 뿐이다. 자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는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완벽하지 않은 어떠한 모습도 포함하여) 수용하는가? 

나와 다른 사람 모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가?